영화로 철학하기 / / 2022. 2. 18. 17:31

인타임 - 의식성장

 

인타임 - 음모론과 의식성장의 측면에서


제목 인 타임
감독 앤드류 니콜
러닝타임 109분
추천대상 나는 음모론에 관심이 있다
자본주의가 무엇인가에관한 의문이 있다
아만다 사이프리드를 좋아한다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빈부에 따라 영생이 가능한 미래

 

줄거리


빈민가에 노동자인 주인공 ‘윌’의 내레이션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때는 미래의 어느 시점.
세계는 인류가 DNA 조작으로 인해 만 25세가 되면서부터 성장이 멈추고 청년의 신체나이를 가지고 평생을 살 수 있게 되는 이점을 얻게 된다. 다만, 그때부터 1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지며 팔뚝에 시계가 카운트 다운된다. 이 1년이라는 시간은 그 사람의 수명이다.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는 일을 해서 시간을 벌어야 한다. 혹은 도박으로 시간을 따거나... 시간이 곧 돈이고 목숨인 세상을 주인공은 살고있는 것이다. 윌은 빈민가 일용직으로 하루벌어 하루산다. 우연히 부유층이 사는 도시 ‘뉴그리니치’로부터 온 부자를 목숨의 위험에서 구해주게 된다. 그 부자는 자신이 죽기 위해 빈민가를 왔다고 이야기하면서, 주인공에게 ‘100년’이라는 큰 시간을 선물해주고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리고 100년이 생긴 주인공을 둘러싼 사건이 발생하는데...

실시간으로 오르는 물가


자본주의의 모순과 의심을 하지 않는 대중들.


자본주의 : 생산 수단을 자본으로서 소유한 자본가가 이윤 획득을 위하여 생산 활동을 하도록 보장하는 사회 경제 체제
[표준국어대사전]

영화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자본주의를 시간=돈이라는 설정으로 쉽게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에서 주인공에게 100년의 시간을 선물해준 헤밀턴은 다음과 같은 세상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모든 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부는 이미 갖추어져 있다.’, ‘시간을 독점한 자들은 인플레이션을 유도해 노동자들을 대량학살 하려한다.’라는 충격적인 이야기이다. 사실 이건 영화 내의 진실이 아니라 세상의 진실을 담고 있다. 그렇다. 극소수의 엘리트들은 지금도 인플레이션을 유도해 서민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만들고 있다.

영화에서 노동의 대가는 시간으로 받는다. 현실도 그렇지 않은가?


노동자들은 자기가 착취당하는 줄도 모르고 생존을 위해 일만할 뿐이다.
누군가는 시스템을 지배하고 있고, 누군가는 시스템을 수호한다. 어떤이는 시스템의 맹점을 파고들어 부를 편취한다.
또 다른 이는 시스템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시스템에 순응한다.
주인공 윌은 여기서 말한 유형의 사람이 아니다. 윌은 시스템의 비밀을 알게된 ‘깨달은 자’이다. ‘플라톤의 동굴’에서 눈부신 진짜 태양을 바라본 자이며, ‘빨간약을 삼킨 네오’이다. 윌은 자신의 정의에 따라 옳은 일을 하였고 선행을 베풀었다. 그 결과 뜻하지 않은 행운인 ‘100년’의 시간을 얻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나는 주인공이 어떻게 시간을 알차게 보낼까 궁금했다.

 

하나의 문이 열리면 다른 문은 닫히게 되는 법.


그러한 의문도 잠시, 100년을 가졌음에도 그의 어머니는 실시간으로 상승한 물가 때문에 주인공의 코앞에서 시간부족으로 사망하고 만다. 윌은 100년을 얻고 어머니는 잃게 된다.
그후 그는 상류층이 살고있는 뉴그리니치로 향한다. 여러개의 톨게이트를 지나 자본가들이 사는 곳에 다다른다. 그곳은 매우 품위있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유가 있어 뛰어다니거나 급해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윌은 자신이 살던 빈민가와 천지차이인 이곳을 경험하며 이 시스템을 부수기로 결심한다.

 

 

영화의 비유


영화는 비유를 통하여 세계가 움직이는 원리를 이해하기 쉽게 단순하게 소개하고 있다.

'하루면 많은 일을 할 수 있죠'

시간 - 시간은 돈이다. 이것은 상징이자 현실에서도 통용된다. 만약 시간이 양도가능하다면 통화를 대체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희소성이 있다. 직접적 상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윌에게 100년을 넘겨준 부자는 세상의 비밀을 알려준다.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바퀴벌레같은 하층민의 개체수를 줄이고 있다’고. 그리고 실제로는 누구나 일하지 않고 먹고살 시간(돈)은 충분히 존재한다고. 전세계의 인구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부는 존재한다. 단지, 극소수의 엘리트들이 이를 독점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독점하는 이유는 하나다.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

 

냉혈한 최적화 배우

타임키퍼 - 시스템의 수호자, 타임키퍼가 있다. 이들은 시간을 훔치는 자들을 엄격관리하는 일종의 경찰이다. 이들은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세뇌된 중간계층으로 볼 수있다. 현실에 비춰본다면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등 인텔리겐차(intelligentsia)로 대변된다. 다만, 이들은 시스템을 너무나 신봉한 나머지 시스템 위의 존재들인 소수 엘리트의 요구를 무시하기까지 한다. (그 이유로 타임키퍼가 죽은 것일 수 있다.) 혹은 타임키퍼는 죽음(Death)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다. 백지수표를 받아도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을 볼 때 ‘죽음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의식성장 - 세상의 모순을 깨닫다.

 

실제로 이렇게 홀덤치면 호구소리 듣기 좋은 플레이

은 시스템의 모순을 느끼고 이를 깨려고 한다. 선지자의 역할을 한다. 세상에 저항하는 인간이다. 우리가 사는 물질세계는 작용과 반작용. 얻는것과 잃는 것, 남자와 여자, 해와 달, 물과 불.. 등등 이원론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인간이 세상을 다르게 보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 그것은 견디기 어려운 고난을 겪고, 모든 것에 대한 의문을 품어보는 삶을 사는 것이다. 윌은 하루하루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시간을 벌기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확실하게 깨닫는다. ‘아, 세상은 정말 잘못 돌아가고 있구나.’
이와 같은 윌은 의식이 확장된 인간을 대변하고 있다.

사실 이 영화는 아만다의 미모감상만 해도 됩니다.


실비아는 ‘의식성장이 가능한 자, 인간의식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자’ 로 볼 수 있다. 그녀는 무미건조한 삶. 새장 속에 갇힌 삶을 살아가고 있다. 모든 것이 풍족한 삶이지만 그녀는 자유가 없다고 느끼며 산다. 그런 삶에 회의를 느끼는 와중에 선지자 윌을 만나고 그의 도움으로 깨어난다.


스스로의 이성으로 판단하라

우리는 스스로 판단할 수 있으면서 왜 그 판단을 미루는가?

외식하는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누가복음 12:56~57]
여기서 외식은 밖에서 밥먹는다는 게 아니다.


영화는 이처럼 많은 것들을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비판한다.
그러나 영화는 자본가는 죽일놈이고 빈자는 옳다는 식의 상투적인 정의론에 구애받지 않는다. 빈민가. 절대다수의 빈자들도 비판한다. 우선 그들의 태도다. 주인공이 사방팔방 날뛰어도 빈민들은 그저 시간이 공짜로 생기면 받아먹기에 급급하다. 시스템의 모순을, 왜 자신들은 항상 가난한지를 깨닫지 못한다. 물론 여기에는 윌이 그 모순을 직접적으로 알리지 않고 자선만 베푸는 것에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개개인은 이성을 가지고 있고 이성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의 빈민가의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지 못한다.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 대중의 무지몽매함을 영화에서는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서 대중은 수동적이고 본능에 따르는 것으로 묘사한다.
일례로, 영화에서는 윌이 100년이라는 시간을 받고 친구에게 10년이라는 시간을 선물한다. 카메라는 친구가 받은 10년이라는 시간과 술집을 클로즈업 한다. 그리고 친구는 시간(돈)을 탕진하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시간 때문에 고통을 받았는데 정작 충분한 시간을 얻으니 방탕해지고 죽음에 이른다는 것이다. 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대중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또한, 자본가의 입을 빌려 대중의 무지함을 설명하기도 한다. 자본가가 가진 100만년의 시간을 뺏기게 되자 자본가는 이렇게 말한다. 시스템이 무너질 것이다. 적자생존. 누구나 영생(부자)를 바란다. 시간(돈)은 나누어 봤자 고통만 늘어난다. 여기서 부는 다룰 수 있는 자가 다뤄야 함을 역설한다. 영화 내에서 대중들은 동물적인 본능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나오는 것을 비추어 볼때, 자본가의 말이 틀린말은 아니라는 씁슬한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말한다.

시스템을 깨고 싶으면 모두가 깨어나야 한다고.
시간을 돈으로 다룬 영화 인타임의 숨겨진 주제는 의식의 확장을 촉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번외 - 영화가 보여주는 미래사회의 모습들


헐리우드 영화산업은 소수의 엘리트 자본으로 운영된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미래의 모습을 영화에서 선전하기도 하는데 이 영화에서도 많은 내용이 담겨있다. 다음은 11년전에 개봉된 영화에서 보여준 미래사회의 모습을 알아보도록 하자.

1. 인식표를 통한 매매

왜 하필 오른손일까?


영화에서는 손목의 인식표를 가지고 모든 거래를 한다.
요한 계시록 13장에 나오는 말이 있다. ‘누구나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이것이 없으면 매매를 하지 못하게 된다.’ 이른바 짐승의 표이다. 소수 엘리트 세력들은 모든 인간들을 통제하고 싶어한다.
일례로 스웨덴에서는 베리칩을 이용해서 회사의 출입증, 자판기 사용 등에 활용하고 있다.

현재 우리의 손에는 항상 들려있는 스마트폰이 모든 결제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인체에 삽입된다면? 그날이 머지 않았다.

(이것은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참고로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 다만 여러 종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2. 단일통화, 단일정부의 등장


영화에서는 시간이 단일통화로 등장했다. 그리고 글로벌 대기업이 전 셰계를 지배하는 것으로 나온다. 미래에서는 가상화폐와 같은 전자화폐가 통용될 것으로 보인다. 무서운 예상으로는 인체의 움직임(노동)을 이용하여 가상화폐 채굴에 사용되는 모습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한다.

3. 인구 감축

여러 영화에서 끊임없이 인구폭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자산시장의 거품을 의도적으로 일으키고 있다.


영화에서 직접 나오지는 않았지만 영화 초반에 주인공에게 100년을 선물한 해밀턴의 말에서 나온다.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일으켜서 빈민가의 인간들을 청소하려 한다.’ 라는 말이다.
아직 자산시장의 붕괴조짐은 나타나지 않는다. 음모론자의 말에 따르면 2020년대 중에 1920년대 후반과 맞먹는 대공황이 발생한다고 한다. 과연 그런 공황사태가 발생할 지는 두고볼 일이다.

4. 유전자 조작기술


MRNA 백신이 떠오르는건 왜일까?


현재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MRNA 백신도 유전자 조작기술을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유전자 가위기술 등 유전자를 조작하는 기술은 개발되고 있고 어디까지 개발되었는지 알수는 없으나, 상당한 진보를 이루어냈으리라 집작된다.

5. 도시 곳곳의 감시망


스마트 시티의 함정이다.


영화에서는 CCTV로 빈민가의 사건 사고들을 모니터링하고 안면인식까지 가능하다. 이러한 기술은 중국 도시에서는 스마트CCTV를 설치하고 있다. 이는 이른바 텐왕 시스템으로 중국 인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도 광역시를 기준으로 이른바 '스마트 시티' 사업을 통해 감시용 스마트CCTV 설치가 진행되고 있다.

6. 강력한 공권력의 국가


미란다 원칙도 없고... 이봐, 영장주의 위반이야!


영화에서는 목숨과 같은 ‘시간’을 빌미삼아 국민들을 강하게 통제하고 있다. 현재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전지구적으로 ‘강한 정부’가 들어서고 있다. 강력한 방역지침으로 국민들의 기본권을 탄압하고 있다.

 





# 깨어나세요. 여러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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